
50대, 변화를 결심한 순간, AI를 시작하게 된 진짜 계기
15년째 보습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가르치는 것이 좋았고 아이들도 좋아서 일이 싫지는 않았다. 하지만 매번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서 공부를 시키는 것이 이제 버겁게 느껴졌다. 물론 이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들도 있다. 잘 못하지만 항상 내 수업에 귀 기울여 주고 서서히 발전해 나가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성취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점점 적어지고, 뭐든지 쉽게 정보를 습득하며 커온 아이들은 긴 문장을 읽는 것도 계산을 하는 것도 버거워했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얼마동안 이 일을 더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년은 길어지고 일은 계속해야 하는데, 내가 20대에 꿈꾸었던 나의 중년의 모습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세계를 다니고 많은 경험을 하고 글을 쓰는 것, 이런 것들은 여전히 꿈으로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살면서 항상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오는 법. 작년에 20대 시절 어학연수에서 만났던 외국 친구들을 독일에서 27년 만에 만나고 나의 생각이 완전히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실행하지 않으면 변화는 오지 않는다. 그 옛날이면 절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옛 친구들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27년 만에 한자리에 모인 친구들은 어느새 흰머리가 희끈희끈한 중년의 모습이었다. 그때 한 친구가 말했다. “네가 우릴 찾지 않았다면 우린 평생 보지 못했을 거야. 너의 실행력에 감사해”.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를 띵 얻어맞은 것 같았다. 순간 머릿속에 무수히 할까 말까를 고민하고 미루고 있었던 모든 것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결심했다. 하다가 못하면 말고,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한 번 해보자. 해보지 않으면, 가보지 않으면 아무도 결과는 모르는 것이니까.
AI를 만나고 시작된 도전
제일 먼저 한 것이 유튜브를 개설하고 처음으로 챗지피티를 사용한 것이었다. 이건 신세계였다. 얼마나 친절하게 유튜브 개설을 알려주는지. 물론 여러 책들도 사서 공부도 해봤지만 잘 되지 않았었다. 아마도 AI가 없었다면 절대 실행하지 못했을 것 같다. 그렇게 AI에 발을 들여 놓고 여기저기 유튜브와 SNS에서 나오는 수익화에 호기심이 생겼다. 진짜 저걸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다고? 만약 나도 그렇게 돈을 벌 수 있다면 나의 노년의 꿈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설렜다.
하지만 주변에서 다들 내게 말했다. “그 나이에 뭘 새로 시작하려 하느냐”라고 했다. 안정적인 일이 있고 수입이 있는데 왜 굳이 새로운 걸 배우고 다른 일을 할 생각을 하느냐는 말을 들었다. 물론 새로운 것을 배울 때 재미도 있지만 예전 같지 않게 더 힘든 점도 있다. 도대체 내가 굳이 돈 들여 시간 들여 뭐 하고 있나 싶을 때도 물론 있었다. 아직도 종종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데 어떤 일이든 스트레스가 없을 리 만무하다. 잘하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으니 분명 스트레스다. 그러나 계속 부딪히고 해결하다 보면 시간은 지나 있고, 어느새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
그냥 일하고 여행 다니고 골프 치고, 새로울 것 없는 일상을 반복하면 나의 60대,70대 모습은 변해 있을까? 지금 조금씩 변화의 발을 내딛지 않으면 60대, 70대의 모습도 그저 그런 모습일 거고, 지금 어렵고 힘든 일들이 시간이 지난다고 쉬워질까? 오늘의 내가 제일 젊은 나일 텐데, 하루하루 뒤로 미루다 보면 더 힘들어지고 더 늦어질 게 뻔했다. 이제 더 이상 미루지 않기로, 용기를 내서 조금씩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AI라는 작은 호기심이 쏘아 올린 변화
그렇게 챗지피티로 시작한 호기심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자연스럽게 다른 AI 도구들을 만나고, 그걸 사용은 데 푹 빠져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러다 SNS나 유튜브에 올라오는 영상들을 보게 됐다. 이렇게 재미난 일을 하면서 돈도 번다고? 진짜? 시작은 순수한 호기심이었지만, 세상에 쉽게 버는 돈이 어디 있냐는, 저건 다 거짓말일 거라는 의심에 내가 다 증명해 보자는 마음도 있었다.
AI로 음악도 만들고 영상도 만들고 그림도 그려 수익화를 한다니. 내가 알던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AI가 갑자기 없던 호기심을 만들어낸 건 아니었다. 원래 내 안에 있었던 것들이었지만 “난 못 할거야”, “이런 건 젊은 애들이 하는 거야”, “너무 어려운 거 아닐까”같은 불안들이 날 막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AI는 내 안의 욕망을 실현하는 데 너무 좋은 도구였다.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꿈에 불씨가 붙었다.
책과 유튜브 영상, 그리고 챗지피티의 도움으로 하나씩 문제를 풀어나갔다. 잘 모르겠으면 화면을 캡처해서 물어보고, 책에 쓰여 있는 것들을 다시 되묻고 하다 보니 어느새 수노로 음악을 만들고,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려 미리캔버스에 판매를 하고, 한국어교사 자격을 준비하고, 구상만 하다 번번이 중도 포기했던 웹소설까지 다시 쓰게 되었다. 프롬프트를 여러 가지로 실험을 해보고 챗지피티, 제미나이, 클로드까지 차이점이 무엇인지 확인해 보는 과정이 너무나 재미있고 행복했다. 뭔가 새로운 세계가 곧 펼쳐질 것 같은 설렘이랄까.
50대도 가능한 디지털노마드 인생
디지털노마드 인생이라면, 난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다. 그냥 재능 있는 20~30대들만 누릴 수 있는 삶이라 나와는 먼 이야기라고, 그런 자유로운 삶을 꿈꿀 수 있는 그들이 부럽기만 했다. 노트북 하나 들고 어느 한적한 휴양지에서 일하며 쉬는 그런 상상해 보라.. 안 부러울 수가 없다.
그런데 AI를 접하고 생각이 바뀌었다. 디지털노마드 인생을 누릴 수 있는 건 나이와 상관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디서든 만들 수 있는 콘텐츠와 수익화 구조만 있다면, 나이는 진입 장벽이 아니다.
내가 꾸는 꿈은 그리 거창한 게 아니다, 세종사이버대 한국어학과 졸업 후 세종학당 선생님으로 해외에 나가 낮에는 한국어를 가르치고, 저녁에는 콘텐츠를 개발하여 수익을 얻는 것, 그리고 그것들로 가고 싶은 곳을 여행하고 배우고 싶은 것들을 배우는 것, 거창한 성공과 많은 돈이 아니라, 이런 작은 조각들이 모여 내 생활을 지탱하는 것, 그것이 내가 그리는 디지털노마드 인생의 모습이다. 한 가지 일에만 기대지 않고 여러 개의 작은 수입원과 활동을 가지고 있다면, 어디서든 좀더 자유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독일에서 27년 만에 친구들을 만났던 그날처럼, 어디서든 내 자리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 이 블로그를 시작하는 이유
이 블로그는 성공한 사람의 화려한 후기가 아니다. 지금 막 시작한 현재 진행형 기록이다. 수노 음악 만들기 도전 6개월 차, 프로크리에이트 3개월 차, 웹소설은 이제 막 첫 챕터를 쓰기 시작했다. 아직 미미한 수준의 수익을 얻고 있다. 하지만 끈기 없던 내가 언제 이런 걸 해보겠나 싶어, 몇 년 후 이 블로그를 보는 나를 상상하며 디지털노마드 인생으로 가는 여정을 여기에 남기고 싶었다. 27년 만에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의 결심 -"해보지 않으면 아무도 결과를 모른다”-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앞으로 이 블로그는 AI로 음악을 만들어 유통하는 과정, 아이패드 드로잉으로 미리캔버스나 여러 판매처에서 수익을 내는 도전기, 세종사이버대학 편입과 1:1 외국인 한국어 수업 봉사 활동 이야기, 웹소설 집필 과정을 차근차근 다룰 예정이다. 거기에 평생 해온 다이어트 이야기와 15년 학원 경험에서 건진 진짜 교육과 요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함께 풀어보려 한다. 50대에 처음 AI를 접하고 음악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나도 헤봐야겠다”는 용기가 된다면 충분하다. 그리고 이 블로그의 글이 나태해지고 게을러지는 나를 채찍질 하는 도구가 되길 바란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새로운 탭을 연다.